The White Ship - 화이트 호 1/2


The White Ship- 화이트 호

Written by H. P. Lovecraft
Translated by Gaya




내 이름은 바질 엘튼이다. 남쪽 곶의 등대지기로서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대로 이어진 직업을 그대로 잇고 있다. 잿빛의 등대는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썰물이 빠지면 드러나고 밀물이 밀려들면 잠기는 끈끈한 암초 위에 서있다. 과거 1세기 동안 등대는 일곱 바다의 위풍당당한 범선들을 내려다보았다. 조부께서 등대지기였을 당시엔 수많은 범선이 있었으나 내 부친께서 일하실 무렵에는 그 수에 미치지 못했고, 지금은 너무나 드물어져 가끔은 내가 지상에 남은 마지막 사람인 듯한 묘한 고립감까지 느낄 정도이다.

예로부터 먼 나라에서부터 하얀 돛을 단 선단이 이곳을 찾아왔다. 선단은 포근한 태양이 빛나고 달콤한 향기가 기이한 정원과 화미한 사원 주위에 감도는 머나먼 동방의 땅에서 온 것이었다. 나이든 선장들은 곧잘 조부를 찾아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것이 동풍이 창밖에서 을씨년스럽게 울부짖는 깊은 가을밤에 조부께서 부친에게 전해주고 또 부친이 차례로 나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였다.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던 어린 시절, 나는 사람들이 준 책을 읽으면서 이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과 그 밖의 많은 일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들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나 책에 담겨있는 전설보다도 한층 더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비밀스런 바다의 전설이었다. 푸른빛과 비취빛, 잿빛을 띠고, 희기도 하고 검기도 하며, 부드러이 물결의 주름을 이루지만 때로는 산더미같이 커지는 바다는 결코 정적인 것이 아니다. 일생동안 바다를 보아왔고 그에 귀를 기울여왔기에 나는 바다를 잘 알고 있다. 처음 바다가 내게 말을 걸었을 무렵에 내가 들은 것은 잔잔한 해안가와 가까운 항구에 관한 평이하고 소박한 이야기들뿐이었다. 하지만 수년이 흐르자 점점 더 나와 친밀해진 바다는 내게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것은 좀 더 기묘하며 좀 더 머나먼 공간과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이따금 새벽녘에는 수평선에 걸린 희붐한 안개가 갈라져 내게 저 너머의 길을 보여주었으며 밤에는 가끔씩 깊은 바다의 수심이 투명해지고 인광의 빛을 발산하여 아득한 물 아랫길을 비춰주곤 했다. 현재 있는 길과 앞으로 있을 길과 과거에 있었던 길에 대해 드러내 보이는 이런 일별들이 무척이나 빈번했던 이유는, 바다가 산보다도 한층 더 오래되었으며 시간의 기억과 꿈을 싣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만개한 달이 중천에 걸릴 무렵, 남쪽 수평선 너머로 하얀 범선이 다가오곤 했다. 범선은 사뭇 부드럽고 고요하게 남쪽 바다로부터 미끄러지듯 나아왔다. 파도가 거칠건 잔잔하건, 뒷바람을 타건 맞바람을 맞건, 그 배는 언제나 유유하고 소리 없이 물결을 타 넘었다. 돛은 멀찍이 펼쳐져 있었고 기다랗고 기묘하게 생긴 노들로 층 지은 열은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나는 배의 갑판위에서 턱수염과 망토를 두른 한 사내를 발견했다. 그는 함께 배에 올라 먼 미지의 해안을 향해 가지 않겠느냐고 나를 손짓하며 부르는 듯했다. 그 후에도 수차례 나는 만월의 달빛을 받고 있는 그를 보았고 그는 내게 더는 손짓하지 않았다.
Many times afterward I saw him under the full moon, and never did he beckon me. (이 문장이 영 이상함, 문맥상 계속 손짓했다가 맞는듯한데 말이죠..--)

내가 마침내 그의 부름에 답한 그날 밤의 달빛은 참으로 환했다. 나는 빛을 받은 다리 위를 걸어 물 건너의 화이트 호로 걸어갔다. 나에게 손짓했던 인물은 나도 잘 아는 듯한 감미로운 언어로 환영을 표했다. 순간순간 이어지는 사공들의 부드러운 노랫가락 속에서, 보름을 맞은 완숙한 달의 광휘를 받으며 우리는 금빛으로 빛나는 신비로운 남쪽 바다로 나아갔다.

동녘이 장밋빛으로 물들면서 날이 밝아왔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청명하고 아름다운 육지의 초록빛 해안이 저 멀리에 내다보였다. 나무들이 총총한 신록의 대지가 위용을 과시하며 바다위로 솟아있고, 햇빛을 받은 새하얀 지붕과 낯선 사원들의 열주가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녹림의 해안으로 점점 가까워질 때 턱수염의 사내는 이 땅에 관하여 내게 들려주었다. 이곳은 자르(Zar)라는 땅이며, 한때는 인간들에게 깃들어있었으나 지금은 잊혀져버린 모든 꿈과 아름다움의 관념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육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그가 말한 것이 진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일찌기 내가 수평선 너머의 안개를 뚫고 보았거나, 인광을 발하는 대양의 깊은 수심 속에서 들여다보았던 수많은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진 풍경 속에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형태와 환상성은 내가 이제껏 알고 있었던 어느 것보다도 한결 더 근사했다. 그것은 그들이 꿈꿔왔고 보아왔던 것들에 대해 세상이 채 알게 되기 전에 빈곤 속에서 숨을 거두어버린 젊은 시인들의 비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르의 비탈진 풀밭에 상륙하지 않았다. 그 땅을 밟은 이들은 두 번 다시 고향의 해변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화이트 호가 사원이 세워진 자르의 층진 대지에서 소리 없이 멀어지면서 전방의 먼 수평선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도시의 첨탑이 시야에 들어왔다. 턱수염의 사나이가 내게 이야기했다. “저곳은 천 가지 경이의 도시인 셀러리온(Thalarion)이오. 사람이 간파하려고 애쓰지만 허사로 돌아가는 모든 신비가 저 안에 존재하지요.” 나는 좀 더 가까운 시계 내를 다시 살피고 나서 그 도시가 이제까지 알거나 꿈으로 꾸어왔던 어떤 도시보다도 웅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끝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높은 사원의 첨탑은 마치 하늘을 찌르는 듯했고, 먼 뒤편 지평선 너머에 길게 뻗은 으스스한 느낌의 잿빛 성벽위에는 지붕 몇 개만이 엿보였다. 성벽은 수상하고 불길한 느낌의 호사스런 장식띠와 매혹적인 조각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나는 꺼림칙하면서도 끌리는 이 도시에 들어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턱수염의 사내에게 나를 거대한 조각 관문 아크리엘 옆의 석조부두에 내려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는 내 청을 점잖게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천가지 경이의 도시 셀러리온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갔지만 단 한사람도 돌아오지 못했다오. 그 속에는 요귀들과 정상이 아닌 존재들만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전혀 없소. 그리고 저 거리는 도시를 지배하는 허깨비 라티(Lathi)를 만나서 죽은 사람들의 매장되지 않은 유골로 뒤덮여서 하얗게 보이는 것이라오.” 그리하여 화이트 호는 셀라리온 성벽을 그대로 지나쳐 몇날 며칠을 남쪽으로 날아가는 새의 뒤를 따라갔다. 하늘을 나는 새의 윤기 나는 깃옷이 하늘의 색조에 녹아들었다.
to be continued.....

by gaya | 2008/06/03 20:04 | . ┠ 러브크래프트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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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Willows at 2008/06/03 20:49
이야 반갑습니다. 얼마만의 러브씨 소설. 황금가지는 아예 책 안 낼건가 봐요 ㅠㅠ
Commented by 더카니지 at 2008/06/05 13:26
아놔 황금가지....안 낼거면 차라리 계약을 하지 말던가 말입니다. 으음.
Commented by jurian2 at 2008/06/08 12:26
안녕하세요 가야님 요 근래 크툴루신화접해서 많은 지슥습득하는 중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많은 호러영화나 공포소설들이 러브크래프트님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 위어드테일즈 페이지의 글은 꼼꼼히 다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제법 많은 신화를 접해본(공부해본?) 저도 크툴루는 첨이 었지만 네크로노미콘등 여기껏 많이 들었지만 그 근본을 모르던 것을 HPL님이 근원이 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요기 홈피 마스터하는데로 짬짬이 관련소설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괜찮았던게 '탄탈로스의 개'-프랭크 밸크냅 롱, '또다른 냉전'-찰스 스트롱 정도내요 소설들어간지는 이틀밖에 안됬습니다.
HPL님을 배우니 지금까지 보아왔던 TV호로SF시리즈 물들이 다 이런 코즈믹호러라는 것을 조금씩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탁터 후, 렉스 등을 돌이켜 보니 크툴루처럼 생긴 캐릭들이 꽤 있었어요 이세계 역시도 끝이 안보이는 무저갱 같은 느낌이 좌르르.....
Commented by 제목없음 at 2008/06/10 16:03
간만의 번역 감사합니다. 역시 가야님 이글루에는 H.P선생의 글을 봐야하는데 정말 간만이군요ㅠ_ㅠ


p.s 바로 뒤의 포스팅 덕분에 여러모로 링크 된곳과 리플 다신 분들 이글루를 돌아다니며 생각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머리야 복잡해졌지만 나름대로 극과 극의 의견들을 보면서 나름 전체적으로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게되었군요. 부산에서 공익질 한다는 핑계로 촛불들고 나가진 못했습니다만...일단은 요즘 바빠서 관련 글들도 거의 안읽고 있어서 말이죠
Commented by Eibon at 2008/07/13 00:03
감사합니다. 오래간만의 번역이군요 ㅠㅠ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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